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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Linked Horizon 『ルクセンダルク小紀行 (룩센다르크 소기행)』 앨범 감상록 (가사 번역)

말 많은 거에 비해 의외로 개인적인 이야기는 잘 쓴 적이 없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겪고 느낀 거 말하는 거는 좋아하는데 글 앞에서만 서면 귀찮아 하는 습성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최근에는 집중만 하면 열심히 쓰기는 한다.

번역가에게 글쓰기는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최근에는 뭐든지 읽고 있다. 인터넷이나 SNS나 다 좋지만 역시 출판된 책들이 편집이나 검수를 통해 나와서 그런지 확실히 문법적인 부분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아무튼 생각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진솔하게 풀어나가고 싶지만 역시 시작하기 전에 산만해지는 버릇 때문에 어지간한 집중력 아니면 항상 모니터를 앞에 두고 딴 짓만 한다. 역시 이럴 때는 좋아하는 것부터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앞면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번역해 온 모든 앨범의 감상록을 남길 거다. 첫 타자는 나의 처녀작 Linked Horizon 의 ルクセンダルク小紀行(룩센다르크소기행)으로 시작할까 한다. 내가 처음으로 번역한 가사라 애정이 남다르다, 아마도.

읽는 분들이 가사도 참고해서 같이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 하단에 링크를 남겨둘 생각이다. 그래도 무려 8년 전 작품을 그냥 보이는 것은 좀 부끄부끄하므로 한번 더 검수를 거쳤다. 지금 방식에 안 맞는 것들 위주로 고쳤다. 근데 생각보다 어색한 어휘나 문법이 별로 없어서 놀랐다. 아무래도 그거 같다. 제일 좋아하는 음악가다 보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뭐 그런ㅎㅎ..

 

아무튼 시작!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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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彼の者の名は... [Vocalized Version]

(그 자의 이름은...)

레보가 직접 노래 부를 때마다(이하 레보컬) 유독 속사포 랩처럼 도드라지기 시작한 곡이지 않을까 싶다. 원래 길이 대비 매우 많은 가사량을 자랑하지만 이런 곡은 더 그렇다. 자기 곡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많은 것 같다.

아주 록스런 곡이다. 01번 곡으로 내세우는 다른 곡들에 비하면 기승전결 서사가 조금 아쉽지만 남자들은 노래 연습하기 좋은 곡(?). 그래서 이 곡의 진가는 라이브라고 생각한다. 기타 3~4대에 베이스와 드럼의 화음이 심장박동수를 늘려주는 것 같은 게 아주 벅차오르게 한다.

 

가사는 일부러 문어체처럼 번역한 부분이 있다. 곡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둠과 맞서고,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 등등 왕도적인 용사물을 살짝 레보스럽게 비틀었다.

하지만 어둠은 맞서고 넘어서야 할 난관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내가 널 해치워 버리겠음ㅇㅇ!" 이런 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 적대하는 대상은 있지만 그것 자체가 이 곡의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이다. 덤덤하고 고뇌하지만, 최후의 최후에는 누군가와 함께 '용기'로써 넘는 것이다.

그래서 문어체가 강조하기 좋다고 생각했다. 말투를 조금더 부드럽게 옮길 수도 있었겠지만 일부러 어미를 "~다"로 끝냄으로서 스스로 덤덤한 느낌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제목인 "그 자의 이름은..."을 나는 처음에는 '어둠'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지금 쓰면서 듣다 보니 그 어둠이 아니라 '용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보다 용기에 대한 초점이 강한 곡이라서 그럴까.

 

통상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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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来訪者 [Long Version]

(내방자)

통상판에만 있는 inst곡이다. 가사가 있는 곡도 Revo님은 무진장 잘 쓰지만 가사 없어도 정말정말 잘 쓴다. 이 앨범에 담긴 inst 3곡을 들어보면 알 것이다.

분위기는 마치 선술집인 양 다들 시끌벅적하다. 다른 곡들에 비하면 특유의 강렬함은 없지만 가볍게 기분을 띄우고 싶을 때 들으면 좋은 곡이다. 경쾌하게 즐길 수 있다. 전반적으로 블루스인지 재즈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여튼 베이스랑 피아노가 같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 곡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제목인 "내방자"는 '~을 방문한 자'라는 뜻이다. 주인공이 선술집 같은 곳에 와서 소소한 사건을 겪는 걸까.

 

초회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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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戦いの果てに [Long Version]

(싸움 끝에)

초회한정판에만 있는 inst 곡이다. 초회한정판답게(?) 시작부터 아주 신나게 들어온다. 기타들의 박력이 물타고 물타다 절정에 이르러서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폭죽 쏘고 끝 맺는 느낌의 곡이다.

이 곡은 음원도 좋지만 라이브는 더 좋더라. 진짜 가사 없어도 신나서 방방 뛴다. 참고로 나는 라이브 갔다 왔다ㅎ

제목인 "싸움 끝에"는 싸움의 막바지 느낌 물씬 나는 제목과 분위기에서 알 수 있듯 실제로 Bravely Default 게임에서 보스전 할 때 뜨는 BGM이라고 하더라. BGM으로 구성된 Bravely Default OST는 전반적으로 모든 곡들이 레보식 기승전결이 아니라 그냥 1절과 2절처럼(물론 inst) 반복적이기에 살짝 심심할 수 있다. 레보가 LH 명의로 내서 조금더 힘 써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박력과 박력이 부딪혀서 초박력이 느껴지는 곡이다.

 

Bravely Default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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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風が吹いた日 [Piano Solo Version]

(바람이 불던 날)

오직 피아노와 바람만 있는 inst곡. 누군가는 바람이 계속 SE로 들려서 아쉬울 수도 있지만, 이 SE가 들어가서 바람이 부르는 분위기를 더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바람 안 부는 날에는 잘 안 듣게 된다

이 곡은 어떤 소기행을 사더라도 수록된 곡이다. 피아노곡은 항상 무난하게 접근성 좋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다소 블루스/재즈 풍을 풍기는 내방자나 리듬감 넘치는 메탈의 싸움 끝에 보다는 무난하게 듣기 좋은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딱 지금 감상 쓰는 순서대로 3곡 듣고 살짝 피곤함 느낄 때 이 곡 들으면서 힐링한다. 역시 트랙 선정에서도 치밀함을 느낄 수 있다.

제목인 "바람이 불던 날"은 위에서도 언급했다. 바람 좀 부는 날에 듣기 최적인 곡이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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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希望へ向かう譚詩曲 [Long Version]

(희망으로 향하는 담시곡)

레보는 밝은 곡도 잘 쓴다고 많이 느낀 곡이다. 첫 곡이 왕도를 걷는 용사물을 살짝 레보식으로 비튼 느낌이라고 말했는데, 이 곡은 그냥 레보식 왕도 그 자체인 것 같다. 고민도 하고 좌절도 하지만 사람인 이상 항상 추구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의지가 뿜어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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傷ついても 裏切られても 世界を知る痛みを怖れないで

상처 받아도 배신 당해도 세계를 알아가는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아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사다. 인간이기에 겪을 수 밖에 없는 상처, 배신, 아픔, 그리고 두려움이 있는 반면에 인간이기에 추구해야 할 것 또는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 그러니까 세계(세상)를 알아가는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아달라는 말을 한다.

레보는 절대로 마냥 긍정적인 가사를 쓰지 않는다. 항상 고뇌하고, 아파하고, 외로워하는 그런 가사가 더 많다. 그래서 그렇게 시작해서 그렇게 그냥 끝나버리는 소위 말하는 '현실은 시궁창' 가사가 되게 많다.

일단 다른 곡까지 다루면 길어지니 이 곡에 대한 부분만 쓴다면...그래도 레보가 쓰는 가사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항상 살고자 하는 이유를 찾기 때문인 것 같다. 항상 어딘가에서 뜻밖의 즐거움을 느끼고, 의외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비교적 요즘 말로 하면 '소확행'인 거다. 숲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비전 있고 미래가 있지만 그렇다고 나뭇가지 위에서 지저귀는 새의 울음소리를, 나뭇잎 밟으면 들리는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나무 주변에 꽃이 피어나는 것도 같이 보자 이거다.

잘 표현 못하겠는데 거시적이고 또한 미시적이다. 그런 절묘한 균형이 이 사람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8분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여유롭게 잘 사용한 티가 나는 곡이다. 8분이 순식간에 갔다고 느낄 정도로 가사로 꽉꽉 채워넣지 않아서 더 부담없는 곡인 것 같다.

그래서 가사 번역할 때도 잔뜩 힘줘서 하기보다는 최대한 쓰고 싶은 대로, 느끼고 싶은 대로 옮겼다. 사실 안 그런 곡이 있겠냐만은 이렇게 의지가 가득한 곡을 옮길 때 유독 어깨에 힘을 빼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제목은 "희망으로 향하는 담시곡"인데, 담시곡 뜻이 '발라드(ballade)'다. 어미의 e가 빠지는 경우도 있던데 이것까지는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 살짝 보니 詩(시)와 歌(노래)의 차이인 것 같기도 하고...실제로 부를 때도 발라드라 발음하고, 가사표기만 담시곡이라 썼다. 담시곡의 사전적 의미도 '자유로운 형식의 서사적인 기악곡'이라고 되어 있는데 정말 레보다운 형식의 서사적인 기악곡인 것 같다ㅋㅎ

 

아무튼 그래서 번역하면서도 많이 희망을 느낀 곡이다. 요즘 답답한 적이 왕왕 있었는데 확실히 이 곡 다시 검수하면서 들으니 기분이 새로워지는 것 같다ㅎㅎ


마치며

고작 5곡이겠지 했는데 아 역시 말이 많아진다...쓰는 시간도 꽤 걸린 것 같고. 다음부터는 분량 나누어서 포스팅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ㅎㅎㅎ

요즘 실무번역 경력 쌓으면서도 번역하는 감 잃지 않으려고 다시 좋아하는 가사 번역에도 집중하고 있다. 영상번역을 하든 문서번역 을 하든 도움 되겠지. 게임번역이면 더 좋고ㅎㅎㅎㅎ